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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Story

창경궁

by AF™ 2019.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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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은 태종 시절 세종에게 양위한 태종이 지내기 위하여 건축된 궁으로 최초에는 "수강궁"으로

불리었다. 태종 사후에 한동안 사용되지 않다가 제9대 성종이 세조의 왕비이자 할머니인 정희왕후,

생모이자 대비인 소혜왕후, 제8대 예종의 계비 안순왕후를 모시기 위해 1483년 ~ 1484년 사이

대대적으로 궁역을 확장했고, 창성하고 경사스럽다는 뜻의 '창경(昌慶)' 으로 고쳐지었다.

 

일제시대에 "창경원"으로 격하되어 유원지로 사용되다가 유원지 시설은 1983년 ~ 1986년에 철거되어

서울대공원으로 이전되었다.

 


 

창경궁의 주문 흥화문

 

 

흥화문과 명정문 사이에 위치한 옥천교, 옥구슬같이 맑은 물이 흐른다하여 붙여진 이름

 

 

중문 중 하나인 명정문, 명정전으로 향하는 문이며 명정전과 1.2m정도 삐뚤어지게 배치되어있다.

 

 

 

창경궁의 정전이 명정전, 현재 남아있는 정전들 중 가장 오래된 정전이다. 창경원 시절 정전 앞 박석들을

모두 철거하고 정원을 만들었으나 다시 복원하였다.

 

 

함인정 자리에는 1484년(성종 15) 인양전이란 건물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 그 후,

함인정은 1633년(인조 11)에 건립되었고, 1830년(순조 30)에 불타 없어졌다가 1834년(순조 34년)에 중건되었다.
함인정은 국왕이 신하들을 만나고 경연을 하는 곳으로 이용하였으며, 영조가 문·무과에 합격한 사람들을 이곳에서

접견하기도 하였다. 함인정은 건물 사방이 벽체 없이 시원하게 개방된 모습인데, 19세기 궁궐기록화인 <동궐도> 에는

지금과 달리 삼면이 막혀 있다. 함인정 내부의 사면에는 사계절을 노래한 중국 진나라 화가 고개지의 사시(四時)라는

시가 걸려있어 푸른 소나무에 둘러싸인 정자에 운치를 더해준다.

 

 

왕과 왕비의 공간으로 사용된 환경전과 경춘전, 경춘전은 대비, 세자빈 등이 사용하기도 했었다.

임란 당시 소실되었다가 1834년에 중건되었다.

 

 

남향인 영춘헌은 내전 건물이며, 집복헌은 영춘헌의 서쪽 방향에 5칸으로 연결된 서행각이다.
이 건물들의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1830년(순조 30)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834년(순조 34)에 재건되었다. 집복헌은 1735년(영조 11) 1월에 사도세자, 1790년(정조 14)에 6월

순조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영춘헌은 정조가 즉위 후 자주 머물렀던 장소이자 1800년 49세의

나이로 승하한 곳이다. 정조는 영춘헌을 독서실 겸 집무실로 이용 하였다.

 

 

통명전 옆의 양화당은 내전의 한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인조가 병자호란 후 남한산성에서 돌아와

이곳에서 장기간 머물렀다. 이후 인조는 청나라 사신을 이곳에서 접견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곳은

25대 철종의 왕비 철인왕후 김씨가 간병을 받다 승하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의 양화당은

1830년(순조 30)화재로 불탄 것을 1834년(순조 34)에 재건한 것이다.

 

 

내전 가장 깊숙한 곳에 남향으로 위치한 통명전은 왕비의 침전으로 내전의 으뜸 전각이다.

통명전은 보물 제818호로 지정되어 있다. 월대 위에 기단을 조성하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으며,

연회나 의례를 열 수 있는 넓은 마당에는 얇고 넙적한 박석을 깔았다.
이곳에서는 희빈 장씨의 인현왕후 저주사건이 있었다. 1694년 (숙종 20) 갑술환국으로 인현왕후가

복위되자 희빈으로 강등된 장씨는 인현왕후를 저주하며 처소인 취선당에 신당을 차리고 통명전

일대에 흉물을 파묻었다. 희빈 장씨는 이로 인하여 사약을 받게 되고, 희빈 장씨의 시신은 정문인

홍화문 남쪽에 있는 선인문을 통해 나가게 된다. 통명전 뒤뜰에는 샘이 있는데, 1757년(영조 33)에

‘샘물이 맵도록 차다’고 하여 열천(冽泉)이라 하였다. 통명전 서쪽의 연지는 샘이 마당으로 넘치는

것을 막기 위해 1485년(성종 16)만들었다.

 

 

창덕궁과 연결되는 함양문에서 바라본 창경궁의 전경

 

 

춘당지는 원래 왕과 왕비가 농업을 경험하는 권농장이었으나 일제가 이 곳을 준설하여 못을 만들고

일제식 정원을 만들었다. 창경원 시절 이 곳을 가로지르는 케이블카가 있기도 하였다. 1980년대 복원시에

한국식 정원으로 고쳐져 복원하였다.

 

 

소춘당지는 원래 춘당지였으나 권농장을 없애고 춘당지를 새로 만들면서 소춘당지로 격하되었다.

응봉산에서 내려온 물을 저장하였다가 권농장에 공급하였다.

 

 

1909년에 완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다. 대온실은 창덕궁에 거처하는 순종 황제를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일본인들이 창덕궁에 인접한 창경궁내에 동물원과 함께 지었다. 일본인이 설계하고 프랑스 회사가

시공하여 완성하였으며, 철골구조와 목조가 혼합된 구조체를 유리로 둘러싼 서양식 온실이다. 준공 당시에는

열대지방의 관상식물을 비롯한 희귀한 식물을 전시하였다. 1986년 창경궁 복원 이후에는 국내 자생 식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2004년 등록문화재 제83호로 지정되었다.

 

 

2019. 2. 4

창경궁

 

CANON EOS-1Ds MARK II

CANON EF 24-70mm/F2.8L

CANON EF 16-35mm/F4L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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